번호입력기에서 본 입력 디바이스에 대한 이야기 on redgoose note

번호입력기에서 본 입력 디바이스에 대한 이야기

Nest: Tips Category: UI&UX 2018-12-27

1.

통영에서 배를 타는데, 연안 여객선이라도 배를 타려면 신분증 제시는 물론이고, 전화번호도 남겨야 한다고. “여기에 번호 찍으세요”하고 가리키는 키패드. 웅얼거리는 말을 다시 묻고 입력하느라 고생하는 대신 손님이 직접 찍게 한 거다. 오케이. 나도 그게 좋다.

2.

하지만 전화번호용 키패드가 따로 나오지는 않을테니, 그냥 숫자 키패드를 가져다가 /, +, -, 00, Del, Enter 키를 빼버리고 쓰고 있었다. 일단 마이너스(-) 키를 뺀 이유는 분명했다. 010 다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습관처럼 마이너스 키를 눌렀겠나ㅎ 빼는 김에 플러스(+)도 뺐을 거다.

3.

00은 헷갈리니 뺐고, 사람들이 전화번호 다 누른 후에 엔터하는 버릇 때문에 Enter 키도 뺐을 거다. 실수로 지울까봐 Del 키도. 나누기(/) 키를 뺀 건 좀 특이했다. 굳이 손이 가지 않는 상단 키들 중에서 유일하게 사라졌기 때문. 하지만 생각해보니 습관처럼 전화번호 사이에 -를 넣던 사람들이 그게 안 보이니 /를 대신 눌렀을 것 같다. 그래서 그것도 제거한 듯. 나머지 non-numeric 키들은 사람들이 전화번호와 관련해서 누를 생각을 하지 않거나 뭔지 모르는 키라 살아남았다. 아마 한 번에 제거하지는 않았을 거다. 쓰다가 사람들이 잘못 누르는 키가 있을 때마다 뽑아냈을 게 분명. 이 얼마나 멋진 UI 디자인 학습과정인가 :^)

4.

얼마나 닳고 닳았는지, 번호가 지워져서 새로 사다 붙였다. 그런데 그 말은 이 시스템이 아주 잘 작동하기 때문에 티켓 카운터에서 바꿀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미국 가정의 리모콘도 결국 통영항 여객선터미널과 같은 선택을 했다. 더 많은 옵션이 반드시 사용자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보기에 지저분해도 소위 ‘voluntary simplicity’를 택해서 옵션을 제한하는 거다.

5.

그런데 이런 일은 옵션이 사실상 무한대로 바뀌는 디지털 세상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모바일용 앱이나 웹사이트에서 한 화면에서 사용자의 선택 버튼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도 바로 그걸 학습한 UI 디자이너들이 내린 결론이고,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옵션을 ’줄여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9206054_1439369389526993_1414011600163045376_n.jpg

48423973_1439369369526995_3190804326016614400_n.jpg

출처 : https://www.facebook.com/sanghyun.simon.park/posts/1439369416193657